훈련장을 벗어난 신참 파일럿이 솔 릴레이에서 아비스 네뷸라까지 남긴 개인 기록. 이 일지는 귀환할 때마다 CSTA 보급소에 동기화되었으며, 열 번째 기록은 발신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다.
기체Executioner
호출 부호SF-2049
출발지솔 릴레이
기록 상태10건 수신
DAY 01
돌아와야 쓸 수 있는 종이
솔 릴레이비행 00:42위험도 LOW
궤도 정거장을 바라보는 파일럿
교역청 직원은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창구에 면허 비용을 밀어 넣자 출항 허가서와 귀환 신고서를 함께 내주었다. 출항 전에 귀환 서류부터 받는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돌아온 사람만 질문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첫 훈련은 궤도 트랙이었다. 직선에서 부스트를 전부 써버려 첫 코너를 지나쳤고, AI 기체의 미사일 경고음에 놀라 실드를 너무 일찍 펼쳤다. 기록은 형편없었지만 기체는 한 조각으로 돌아왔다. 정비사는 그걸 첫날의 최고 기록이라고 불렀다.
획득 화물없음
선체 상태100%
다음 목적지케플러 관문
개인 기록: 귀환 신고서의 빈칸이 이제는 위협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일도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DAY 02
신호는 광물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케플러 프론티어비행 01:16위험도 GUARDED
소행성대를 가르는 우주 전투기
연료 보증금 100 T를 맡기고 첫 심우주 항해를 시작했다. 레이다에는 세 개의 신호가 같은 모양으로 떴다. 가장 가까운 신호는 니켈 광맥이었고, 가장 먼 신호는 누군가 먼저 파헤친 빈 바위였다. 좋은 센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진실을 전부 말해주지도 않는다.
속도를 12 아래로 낮추자 기체가 광맥에 자동으로 정렬됐다. 채굴 빔을 오래 붙잡으면 열이 100까지 차올라 도킹이 풀린다는 가이드 문장이 떠올랐다. 욕심을 한 번 참았고, 그 덕분에 니켈 34 U를 싣고 돌아왔다.
획득 화물니켈 34 U
선체 상태100%
정산연료비 18 T
개인 기록: 빈 화물칸은 가볍지만 마음까지 가볍지는 않다. 조금 실은 배가 오히려 돌아갈 방향을 더 잘 안다.
DAY 03
팔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케플러 제2채굴구비행 01:53위험도 GUARDED
사이버펑크 우주항의 홀로그램 거래소
오늘은 페라이트와 코발트를 찾았다. 보급소에 도킹하자 선체와 신원을 확인하는 스캔이 길게 이어졌다. 급유가 끝난 뒤 거래 화면에는 판매와 보관, 두 개의 선택지가 떴다. 판매하면 오늘의 연료비를 해결할 수 있고, 보관하면 아직 가보지 못한 좌표를 열 수 있다.
절반을 팔고 절반을 맡겼다. 중개인은 애매한 선택이라고 했지만 나는 살아 돌아갈 비용과 다시 떠날 이유를 동시에 남기고 싶었다. 창고에 들어간 코발트는 돈이 되지 않았지만 지도 가장자리에 희미한 점 하나를 밝혔다.
판매페라이트 41 U
보관코발트 22 U
신규 좌표1개 진행 중
개인 기록: 교역은 물건을 파는 일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 중 어느 쪽을 살지 결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DAY 04
화물선은 양쪽에 같은 시각표를 보낸다
CSTA K-17 항로비행 02:08계약 ESCORT
우주정거장의 CSTA 계약 서명
CSTA 수송선이 출항하기 12분 전, 계약 두 장이 동시에 열렸다. 하나는 배를 지키면 돈을 준다고 했고 다른 하나는 멈추면 더 큰돈을 준다고 했다. 나는 호위 계약에 서명했다. 정의감보다는 면허 갱신 비용이 이유였다.
해적기는 워프 경계에서 나타났다. 자동 비행을 켜면 수송선을 따라갈 수 있었지만, 그대로 두면 공격 각도를 내주기 쉬웠다. 편대에서 떨어져 해적을 유인한 뒤 실드를 펼쳤다. 수송선은 예정 시각보다 43초 늦게 도착했고, 선체에는 두 번의 피격 흔적이 남았다. 무사고 보너스는 받지 못했지만 화물은 하나도 잃지 않았다.
궤도 위 CSTA 함대 출격
계약 결과호위 성공
유효 명중2회
수송선 피격2회
개인 기록: 지킨다는 말은 멋있지만 실제로는 누군가 대신 맞아주는 시간의 합계다.
DAY 05
성운은 거리보다 목소리를 먼저 삼킨다
오로라 성운비행 02:47위험도 CONTESTED
성운을 가르는 우주 전투기
새 좌표가 열렸다. 오로라 성운에 들어가자 별빛은 가까워졌는데 보급소 신호는 멀어졌다. 통신은 문장의 끝부터 사라졌다. 관제사는 귀환 조건을 반복했지만 내게 들린 것은 “위협이 완전히… 항행권이…”뿐이었다.
티타늄 광맥 근처에서 정체불명의 기체와 마주쳤다. 서로 조준할 수 있었지만 먼저 쏘지 않았다. 광물 행성 뒤로 들어가자 양쪽의 표적 고정이 동시에 풀렸다. 우리는 같은 바위를 사이에 두고 같은 티타늄을 캤다. 떠날 때 상대가 짧은 점멸 신호를 보냈다. 인사였는지 다음에는 쏘겠다는 경고였는지는 알 수 없다.
획득 화물티타늄 19 U
접촉미확인 1기
교전없음
개인 기록: 말을 잃은 곳에서는 발사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문장이 된다.
DAY 06
구조 신호는 구조를 원하는가
오로라 외곽비행 03:11위험도 CONTESTED
소행성 지대의 CSTA 호송선단
채굴 신호 사이에서 오래된 구조 비콘을 발견했다. 발신 시각은 일주일 전인데 신호에는 오늘의 교역소 시세가 섞여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내 호출 부호와 비슷한 잡음이 들렸다. 관제소에 문의했지만 등록된 구조 요청은 없다는 답뿐이었다.
비콘 옆에는 파손된 화물 상자와 이리듐 7 U가 떠 있었다. 회수 버튼 위에서 손을 멈췄다. 주인이 살아 있다면 도둑질이고, 죽었다면 증거를 없애는 일일 수 있었다. 좌표만 기록하고 떠났다. 귀환 후 기록을 제출하자 직원은 화면을 닫으며 SR-071이라는 번호를 혼잣말처럼 말했다.
회수 화물없음
기록 좌표AUR-19-Δ
검색어SR-071
개인 기록: 오늘 처음으로 화물을 두고 왔다. 그런데 빈 화물칸 안에서 무언가 계속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DAY 07
깃발은 도장이 아니라 서명이다
나이트폴 리프트비행 03:34위험도 LAWLESS
네온 우주항구를 향한 CSTA 군중
나이트폴 리프트에서는 누구도 소속을 숨기지 않았다. 얼라이언스 기체는 항로를 따라 편대를 이루고, 해적 연합은 보급소 바깥에서 계약 상대를 기다렸다. 중립인 내 기체에는 어느 쪽 깃발도 없었지만 그래서 양쪽 모두 나를 의심했다.
밀수 화물을 실은 해적 한 명이 연료를 나눠주는 대가로 오로라의 구조 비콘 좌표를 요구했다. 거절하자 그는 웃으며 이미 같은 좌표를 열두 명에게서 샀다고 했다. 열두 명. SR-071 기록에서 본 숫자와 같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좌표가 사람을 찾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거래거절
진영중립 유지
수신 정보동일 좌표 12명
개인 기록: 깃발이 없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내 결정을 대신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DAY 08
맞은 자국은 격납고까지 따라온다
나이트폴 광맥지대비행 02:59위험도 LAWLESS
우주 정비 격납고의 전투기
팔라듐 광맥을 찾은 순간 세 기의 해적 신호가 나타났다. 첫 미사일은 실드로 막았고 두 번째는 광물 행성의 그늘에서 피했다. 세 번째는 선체 오른쪽을 뜯어냈다. 화물 보호 격벽이 버텨 팔라듐은 남았지만 조종 반응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현장 수리를 요청하면 비쌌고, 직접 돌아가면 위험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보급소까지 18분 동안 계기판의 손상 수치가 1씩 내려갔다. 도착했을 때 정비사는 살아 돌아온 것을 축하하지 않고 출장비를 아꼈다고 칭찬했다. 이곳다운 환영이었다.
획득 화물팔라듐 11 U
귀환 선체37%
수리 상태완료
개인 기록: 기체는 고칠 수 있었다. 그 18분 동안 들었던 경고음은 어디에서도 지워주지 않았다.
DAY 09
내 목소리로 도착한 경고
아비스 네뷸라 관문비행 04:02위험도 ABYSSAL
블랙홀을 바라보는 조종사
보관해 둔 광물을 모두 사용해 아비스 네뷸라 관문을 열었다. 워프가 끝난 뒤 구조 신호가 바로 나타났다. 발신자는 SF-2049. 내 호출 부호였다. 발신 시각은 오늘로부터 일주일 전이었고 좌표는 내가 선 자리와 정확히 같았다.
잡음 사이에서 내 목소리가 들렸다. “이 기록을 듣는다면 같은 실수를 하지 마.” 그 뒤로 좌표 하나가 반복됐다. 지도에는 불이 꺼진 평행 은하 하나만 떠 있었다. CSTA 데이터베이스에서 좌표를 조회하자 접근 권한 오류 대신 짧은 문장이 나타났다. SR-071 회수 기록에 첨부된 좌표와 일치.
신호 발신자SF-2049
시간 오차-7일
좌표 일치SR-071
개인 기록: 내일 출항하지 않으면 이 기록은 경고가 된다. 출항하면 예언이 될지도 모른다.
DAY 10
지도에 불이 꺼진 우주
미확인 평행 채널비행 --:--연결 불안정
블랙홀을 향한 고독한 우주선
출항 보증금을 맡겼다. 창구 직원은 목적지를 확인하고도 아무 말 없이 귀환 서류를 한 장 더 내주었다. 종이 아래에는 이미 서명이 있었다. 내 필체였지만 내가 쓴 적은 없었다.
워프 경계 너머에는 같은 별과 같은 보급소가 있었다. 모든 것이 익숙했지만 어느 곳에도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레이다에는 기체 한 대가 표시됐다. 식별 번호 SR-071. 조종석은 비어 있었고 자동 항행 장치만 다음 좌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내 화물칸에서 사흘 전부터 들리던 소리가 멈췄다.
이 기록을 CSTA에 전송한다. 수신된다면 귀환 서류의 마지막 칸에 다음 문장을 적어달라. 항로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돌아옴으로써 완성된다.
화물분류 불가
선체 상태신호 없음
다음 좌표REDACTED
전송 종료: 이후 SF-2049의 정규 항행 신호는 수신되지 않았다. 다만 일곱 개 평행 채널에서 동일한 귀환 서류가 빈 조종석과 함께 발견되었다.
궤도 정거장과 우주 함대의 여명END OF ARCHIVE // ROUTE REMAINS OPEN